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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성리학에 심취하여 주자의 학문을 근간으로 삼았으며, 예를 중시하고 도덕적 수양과 사회 질서 유지에 깊은 관심을 보였어요. 특히 이기론에 대해 깊이 탐구하여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원리에 대한 체계적 해석을 시도 했어요. 또한 예학에도 큰 관심을 보였으며, 조선 예제의 정비에 기여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어요. 그의 학문은 단순한 이론 연구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정치와 사회 제도의 정비로도 이어졌으며 유교적 이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려 했어요. 그는 관직에서도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으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어요.이언적은 경연에서 왕에게 유학의 도리를 강론하며 올곧은 언론을 펼쳤고, 명종 초에는 대사헌으로서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며 간쟁을 서슴지 않았어요. 그는 대신이 되어도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지 않고, 권세를 좇는 대신들과 거리를 두며 스스로를 지켰어요. 특히 그의 정치 철학은 군왕의 도덕적 수양을 중시하는 성군론에 입각해 있었는데 신하로서 군주에게 충언을 아끼지 않는 자세를 유지했어요. 그러나 자세는 당시 권신들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정치적 탄압을 받기도 했어요. 특히 을사사화 당시 윤원형 일파의 정치 탄압 속에서 그는 관직을 사임하고 낙향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고향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에 전념하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