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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문풍을 조선에 적극 반영한 인물

커튼명장 암막커튼 거실 쉬폰 린넨 100%암막※ 2025. 10. 16. 21:52

 

 견문을 바탕으로 성종 대에 금양잡록 을 저술 했어요. 금양잡록 은 경기도 시흥 금양현 일대의 농사 경험과 관찰을 기록한 농서로, 농업뿐만 아니라 수리, 목축, 양잠, 의식주, 약용식물에 이르기까지 당시 생활문화 전반을 망라한 실용서로서 조선 전기 농업사와 민속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에요. 또한 그는 성종의 문예 진흥 정책에 따라 사가독서관에 참여해 문장과 학문을 진흥하였으며, 홍문관 부제학, 대사헌, 대사간, 이조참판, 공조참판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어요. 강희맹은 또한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그의 시는 조선 전기 한시 문학의 대표적 성취로 평가 받아요. 그는 관동팔경을 주제로 한 시를 비롯해 자연과 인간의 정서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다수 남겼으며 절제된 감성과 깊은 철학적 사유가 담긴 시풍으로 당대 문단에서 높이 평가 받았어요.문장에도 능하여 시문집인 한정유고 와 강한정집 등을 남겼고, 이는 후대 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줬어요. 성종은 그를 특히 신임하여 자문을 구하고 정책적 의견을 수렴했으며, 강희맹 역시 청렴하고 강직한 자세로 왕의 뜻을 보좌 했어요. 그가 사헌부 대사헌에 재직할 당시에는 부정부패와 관료 기강 해이를 바로잡기 위해 힘썼고, 언관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하여 왕권과 신권의 균형을 꾀 했어요. 강희맹은 명나라에서 귀국한 후 명나라 문풍을 조선에 적극 반영 했고 고전 연구와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학문적 체계를 정비 하는데도 기여 했어요. 그는 말년까지 학문과 저술에 힘썼으며, 1483년 향년 6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 했어요.